21.05.01 [일상] 노동절에 얻은 땀의 결실
오늘은 토요일의 노동절.
가뜩이나 올해는 공휴일이 주말 배치로 많이 되었다던 데, 노동절을 토요일로 맞이한 근로자는 아쉽기만 하다.
심지어 오늘 토요일답지도 않게 노가다를 해야만 했다.
노가다를 하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친구 H 그리고 나와 전 직장 동료였던 독일 친구가 코로나 여파로 재택근무가 확대되며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던 독일 친구는 더 이상 전 직장에 근무를 하지 않을 것 같단다. 퇴사든, 이직이든, 뭐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문제는 한국에 계약만료가 된 집이었다. 당연히 한국에 금방 돌아올 요량으로 떠났던 독일 친구는 갖가지 사정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 말은 즉슨, 전에 살던 집의 짐을 모두 정리해야 한다는 것.
독일 친구는 절친인 H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왠만한 소규모의 짐은 몇 주 전 H와 나 둘이서 PP박스에 정리해 보관 업체에 다 맡겨버렸다. 그리고 몇십만원 정도의 보관료와 함께 우리의 수고비를 청구해 그날 밤 와인과 치킨으로 파티를 벌였다.
그러나 집에는 여전히 큰 가구들이 남아 있었다. 패브릭 쇼파, 퀸 베드, 서랍장, 책상, 스툴 의자 등.
집주인에게 보증금에서 까달라고 하고 남은 가구를 그대로 두면 안돼냐며 호소했지만 집주인에게 씨알도 안 먹혔다. 가구를 다 비울 때까지 1일 단위로 월세를 청구해 보증금에서 차감하겠단다. 결국 짐을 다 정리하긴 해야 된다는 말.
이러한 경위로 H는 그 집의 근처에 살고 있는 나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독일 친구에게 20만원을 받고 나 혼자서 짐을 다 빼보지 않겠냐고. 사정이 딱하기도 하고 마냥 무시할 수는 없어서 좀 고민을 하다가 주말 하루를 반납해 돈을 번다는 생각으로 제안에 응했다.
경위 설명이 너무 길었으나 결과적으로 오늘 20만원 벌자고 빈집에서 혼자서 가구 폐기물을 처리하는 노가다를 하게 되었다.
저번에 간단한 물품들을 정리하면서도 느꼈지만 유럽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입식 생활을 하다보니 참 집이 더럽더라. 물론 그거 하나만으로 더러운 집을 설명할 수는 없을 거다. 개인차도 어느 정도 있을 거고 생활 방식도 한국 사람이 더 깔끔한 건 사실이니까.
어떻게 이리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침대 매트도 아주 더럽더라. 한국을 떠나기 전에 여자친구가 있었다던데 그런 흔적도 좀 보이고, 참. 그래도 그나마 좀 깨끗하고 쓸만하다 싶은건 당신 근처의 마켓에다 무료나눔으로 넘겨버렸다. 덤으로 미처 처리하지 못했던 다른 소물품들도 얹혀줬다.
그렇게 일을 거의 끝내갈 무렵, 관리사무소에서 경비 아저씨가 나를 불러세웠다. 집 앞에 폐기물을 다 처리하신 거냐며.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갑자기 여태 일하면서 사람들이 스티커도 안 붙이고 폐기물을 아무렇게나 버려놔서 자기가 덤탱이 썼던 이야기로 호소를 하시더라. 물론 나는 스티커를 구매해서 붙일 생각이었지만 듣자 하니 폐기물 스티커를 부착한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가구별, 사이즈별로 다른 가격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리미판, 빨래 건조대, 플라스틱 스툴 같은 아주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다 3000원 이상 지불해야 된단다. 그러면서 경비 아저씨가 내 번호랑 이름을 묻더라. 혹시라도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 안 한 게 있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허허, 거 참.
나는 20만원 벌려다가 귀찮은 일까지 다 떠맡는 거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상황을 모면하다시피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려고 했고 그러자 아저씨가 그냥 자기한테 5만원을 달란다. 대충 전체 견적을 내보니까 그 정도 나올 거 같은 데, 집 안까지 확실히 비워놓기만 하면 혹시 더 나오는 금액은 책임을 묻지 않으시겠단다.
조금은 찜찜하지만 내 생각에도 자질구레한 것까지 확실히 스티커를 붙이면 전체 폐기물에 대한 비용으로 그 정도는 소요할 것 같아서 알겠다고 했다. 또 날씨가 오락가락하며 소나기가 자꾸 오는데 번거롭게 행정복지센터를 가고 있자니 귀찮기도 하고.
결국 3시간 가량의 노동의 댓가로 폐기물 처리 비용 5만원을 제외한 15만원을 수중에 얻었다. 토요일 노동절에 일한 건 억울하지만 뭐 이 정도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잖아? 얻은 돈으로 뭘 할지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